출처 : 참여연대(사회복지위원회) 월간복지동향 1월호(2025.1)
박영아 : 공익인권재단 공감 변호사
사람이 돌봄과 무관한 생활을 하는 기간이 생각보다 짧다. 어쩌면 없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돌봄이 필요하거나 돌봄을 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별다른 대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지만, 비영리단체인 공감에서 하는 일 또한 돌봄의 성격이 적지 않다. 취약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지원하는 일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2016년 강제퇴거명령 취소소송을 지원한 이후(소송은 졌지만 지난한 과정을 거쳐 겨우 체류자격을 회복하실 수 있었다),
8년 동안 이런저런 일들로 인연이 이어진 분이 있다. 얼마 전 이분의 자녀가 이른바 인서울 대학교 합격 통보를 받은 소식을 전해 들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아들이 아버지보다 낫다”라고 했더니 돌아온 대답은 “여기서 나는 바보일 수밖에 없어서 당연하다”라는 것이었다.
이렇듯 취약성은 고정적이지 않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취약한 상황에 놓인 이들은 대부분 일정 부분 돌봄을 필요로 한다. 주변을 둘러보더라도, 많은 시민단체는 취약성을 만들어내고 고착화시키며 강화하는 제도와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한 운동과 더불어 그 제도와 구조의 한복판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과 함께하고 지원하는 활동을 병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넓은 의미에서 돌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고민과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일방적 돌봄은 주체화가 아닌 대상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원론적 고민도 있을 수 있고, 같은 패턴으로 반복되는 개별 사안들을 지원하느라 에너지를 소진하면서 정작 사회 변화를 위한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내적 갈등을 느끼는 때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고민과 갈등은 지금 하는 일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라기보다 긴장을 놓지 않으려는 노력이라는 생각도 든다. 취약성이 발생하는 구체적 상황으로부터 출발해야 의미 있는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음이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사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돌봄이 그 자체로 이미 가치 있는 노동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유급이든 무급이든 노동임이 틀림없다. 그런데도 돌봄은 무가치한 노동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무엇이든 돈으로 환산할 수 있어야 가치를 매길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돌봄노동이 가장 마지막까지 무급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돌봄이 가족 안에서만 이루어진다는 관념 또한 한몫한 것 같다. 사적 공간에서의 노동은 그 공간 안에 있는 사람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고 간주되고 공적 역할은 부정된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활동이 공공의 이익을 가져온다는 사회에서 타인을 위한 돌봄이 사적 이익에 그친다는 것은 역설적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거나 지금은 가족 간에도 더 이상 돌봄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 상황에 이르렀다. 돌봄의 공백이 여기저기서 가시화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가 내놓기 시작한 대책은 해외에서 저임금 노동자를 부르자는 것이다. 정부는 어떻게 하면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을지 열심히 궁리하고 있다.
“가족 같은” 것도 아닌 진짜 가족인 전근대적 일터에 가장 취약한 이주노동자들을 보내면서 노동법마저 적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예견되는 문제들을 차치하더라도 이 “해법”이 가지는 근본적 문제점은 이주노동자들을 언제든지 돌려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한국에 있지만 한국 사회의 일원이 아니고 한국에서 일하고 있지만 본국 노동시장에 속한다는 허구를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장기적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산업구조가 바뀌더라도 돌봄노동 수요는 없어지지 않을 것임이 분명한데, 평가절하될수록 돌봄노동에 종사할 사람들은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값싸다”는 것도 애초에 사람을 고용할 수 있는 처지여야 가능한 말이다. 새삼스럽지만, 인간 사회에서 돌봄노동은 필수적이다. 돌봄은 그 자체로 이미 공적인 영역에 속하는 일이다. 돌봄 공백을 어떻게 해소할지에 관한 모든 논의는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언급한 지인의 아들 대학 합격 소식을 들은 날은 한국에서 미등록 이주 아동으로 자라 우여곡절 끝에 스무 살을 훌쩍 넘은 나이에 처음으로 체류자격을 얻고 대학교를 졸업한 후 어엿한 직장을 가지게 되었다는 청년의 얘기를 전해 들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의 산재 사망 소식을 들은 날이기도 하다.
그가 그나마 미래를 향해 힘들게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어렸을 때부터 지켜준 시민단체 활동가와 연구자 덕분임이 분명하고, 결국 스러지고 만 것은 언제든지 앗아갈 수 있는, 바늘구멍만도 못한 기회만을 남겨준 한국 사회와 제도가 직접적, 간접적 원인이 된 것 또한 분명하다.
우리가 처한 상황을 드러내고,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첫걸음이 되는 것은 무력 동원을 서슴지 않는 권력 다툼이 아닌,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챙겨주는 것, 즉 돌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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